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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BOOK

유리, 광섬유, 콘크리트의 공통 분모는 모래(Sand)이다

by 노바티오 2024. 9. 17.

이집트의 서쪽과 리비아 동쪽 국경을 사이에 두고 면적 72,000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사막 Great Sand Sea가 있다. 서울특별시 전체 면적이 약 605 제곱 킬로미터이니 서울 면적의 100배가 훨씬 넘는 실로 거대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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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Sand Sea의 모습

 

이전에는 죽음의 땅(Land of the Dead)라 불리던 곳을 1873년 독일 지리학자 & 탐험가였던 Gerhard Rohlfs가 최초로 이름을 붙였다.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모래 언덕의 최고 높이는 100미터 달한다.

 

바다와 같이 넓은 지역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Ocean(대양)이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Sea(바다)'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름과 달리, 물 한 방울 구하기 힘든 척박한 곳이다. 롤프스 자신도 이곳을 탐험하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장점 하나는 있다고 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막의 모래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은 규사(Silica) 함유량 95퍼센트 이상을 자랑하는 '노란색 모래'가 이곳에 있다.

 

특히, 리비아(Libya) 쪽 사막 모래의 규사 함유량은 98퍼센트에 달한다. 달리 말하면, 리비아 쪽 사막의 모래는 '유리(Glass)' 그 자체인 셈이다. 건축 자재로만 활용 가능한 쓸모없는 모래(*규사 함유량 50퍼센트 이하) 사막을 보유한 이집트로서는 통탄 할 노릇이라 생각한다!

 

이집트 통치자들은 이런 지리적 아쉬움을 화려한 장신구로 달래야 만 했나 보다! 어린 시절에 요절한 이집트 왕자 투탕카멘(Tutankhamen)의 목걸이 정 중앙에 화려한 유리 장식이 있다. 그의 목걸이에는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리비아 사막에서 가져온 모래에서 추출한 유리로 만든 딱정벌레 문양이 박혀있다.

투탕카멘 목걸이 King Tutankhamun Scarab Necklace (Image from https://egypt-museum.com/tutankhamun-scarab-necklace)

 

모래 속에 들어있는 규사(Silica)는 유리의 재료이면서, 반도체의 원료이기도 하다.

 

모래에서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사에 탄산나트륨(Sodium Carbonate (Na₂CO₃))과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CaCO₃))을 추가하고 1,700도-2,000도의 열을 가하면 액체 형태의 유리가 만들어 진다.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화려한 크리스탈 유리는 영국 출신의 유리 제작자 George Ravenscroft가 1674년-1676년 사이에 최초로 만들었다고 기록이 전해진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공장 종업원 중 한 명이었던 무명의 이탈리아 사람이 발명)

Crystal Glass, Photo by Daniele Levis Pelusi on Unsplash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 제작 공정도 유리 제작 과정과 비슷하다. 규사에 같은 온도의 열을 가하면서 '탄소' 만 추가하면 액체형 실리콘이 생성된다.

 

규사에 탄소(C)를 추가하여 1,700도 이상의 열을 가하면 산소(O2)가 없어진다. 이 후 생성되는 액체형 실리콘(Crude Silicon)을 정제하여 얻어지는 고순도(99.999%) 실리콘을 활용하여 '반도체'를 만든다.

 

유리를 활용하여 인류는 망원경과 안경, 현미경 발명이라는 기술 발전을 이루었다. 혁신적인 기술들은 유럽인들이 험난한 바다를 서서히 극복하며,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1280년대 이탈리아에서 유리를 활용한 안경이 처음으로 개발되고 활용되었다. 이후 나이 먹은 사람들도 좀 더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알았던 나이 먹은 사람들이 책을 좀 더 오랜 시간 접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 Hans Lippershey망원경(1608)을 발명하였다. 또 다른 네덜란드 사람 Antonie van Leeuwenhoek현미경(17세기)을 개발하였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본다는 차이만 있을 뿐, 유리를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동전의 앞뒤 면과 비슷한 발명이다.

 

1600년대 해상 무역이 활발하게 발달했던 네덜란드지정학적 위치와 역할 때문에 망원경과 현미경이 그 곳에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인류는 모래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렌즈의 발명으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머나 먼 세상을 바라볼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나뭇잎 속 세포와 같은 미세한 마이크로 세상이 존재함을 렌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망원경은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의 도구, 먼 거리의 적을 한방에 저격하는 무기 제작에 활용되었다. (*신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현미경은 인류를 원인 모를 대량의 죽음으로 내몰았던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도시 '로칼린 Lochaline'은 순도 95%의 '은색 모래'로 유명한 도시이다. 규사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실리카 샌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 석영 모래를 채취하는 광산이 오픈 한 이래 이 곳은 영국의 전쟁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핵심 광산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모래 속 실리콘이 노르웨이로 수출된다.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탄화 규소(silicon carbide)는 오늘날 미국 테슬라 전기 자동차 T3의 주행 거리를 늘려주고 있다. 이 외에도 배터리의 빠른 충전과 전기 소모를 최소화 하는 전기 자동차 제작 공정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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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ainebleau Sand (Image: leslovetrotteurs.com Screen capture)

 

프랑스 남부 도시 '퐁텐블루 Fontainebleau' 또한 '실버 샌드'의 도시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 유명한 조형물, '유리 피라미드(Glass Pyramid)' 건축 재료를 이 도시에서 가져왔다.

 

독일이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유달리 잘 발달했던 광학 기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이 한 발 앞섰던 광학 기술에는 망원경, 현미경, 잠망경, 거리 측정기 제작 기술 등이 포함된다. 독일 광학 기술을 선도한 사람의 이름은 Otto Schott 이다.

 

1914년까지 영국이 독일에서 수입한 광학 기술 제품의 비율은 전체 유통량의 60 퍼센트를 넘었다. 영국의 자체 생산 능력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나머지 30퍼센트는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1915년 독일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모든 광학 장비의 수출을 금지해 버렸다. 영국은 곧바로 스위스로 달려가 무기에 부착하는 각종 광학 장비를 모조리 수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스위스 역시 광학 기술은 독일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본거지 영국은 19세기까지 광학 기술 역시 앞서 있었다. 1696년에 이미 영국의 윌리엄 3세는 '유리창'에 세금을 매기는 정책(Window Tax)을 시행했을 정도로 유리 제작 기술이 발달했다. 유리가 무거울 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은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은 부품이라고 여겼던 '유리 제품'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영국은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중공업에 더 치중했다. 그 바람에 결국 20세기에는 독일에 광학 기술 패권을 넘겨주는 실수를 범했다.

 

모래는 또한 현대인들의 삶에 필수적이라 여기는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1934년에 Great Sand Sea와 같은 대자연 속에 존재하던 실리카 유리를 미국의 젊은 화학자 한 명이 실험실에서 개발을 해 내었다.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 (Jame Franklin Hyde)가 실험실에서 재현해 낸 '규소 유리'의 순도는 월등했다. 리비야 사막 모래가 함유한 유리 순도 95 퍼센트보다 더 높은 '순수한 유리 (Pure Glass)' 그 자체였다.

 

1870년대 알렉산더 그래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를 발명한 이후,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구리 Copper 전선이었다. 송수신 거리는 무척 짧았고, 정보의 양도 극히 소량이라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1960년대에 영국 Harlow에 스탠다드 텔레콤 연구소(The Standard Telecom Laboratories, STL)가 있었다. (*현재는 캐나다의 광통신 & 네트워크 장비 업체 Nortel에 인수.합병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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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Kong Science Park, Charles Kao, Optical Fiber

 

1966년에 이 곳에서 근무하던 중국 상하이 출신(1933)의 '찰스 카오 Charles Kao'는 유리에 빛을 통과시켜 정보를 전송하는 케이블을 발명한다.

 

이 케이블은 무척 빠르면서도 정보의 손실이 없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빛을 통과하는 선'이라고 하는 이 물체에 '광섬유 (Optical Fiber)'라고 이름 붙인다.

 

'카오(Kao)'는 오늘날 '브로드 밴드의 아버지(Father of Broadb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광섬유를 발명한 지 43년 후2009년도에 인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 폰 세상은 '광섬유' 없이, 더 근본적으로는 유리를 품고 있는 '모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은 이렇게 주위의 흔하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발전되는 듯 하다. (계속...업데이트 됩니다)


(참고문헌 Reference)

  • Ed Conway, <Material World: Part One 'Sand'>, Penguin Random House UK, Page 27-121